• 주인과는 면식이 없더라도 문화유산이 좋아 찾아왔다면 부질없는 후원회 걱정은 하지마시고 하고픈 이야기 있으면 하고 가소.
  • 2017. 08. 13
  • 개는 주인 아닌 사람에게 짖는다.
  • 사진) 김양묘와 김인문묘

    설명) 경주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남쪽 김인문묘(추정 김유신 장군묘)와 나란하게 위치해 있는 왼쪽의 고분이 경상북도 기념물 제33호 김양(金陽)묘이다. [삼국사기]김양이 향년 50세에 자기 집에서 죽으니, 문성왕이 애통해하며 관직을 높여주고 부의와 장례를 모두 김유신 장군의 장례 때처럼 시행하게 하여 태종무열왕릉에 배장 하였다.’ 한다. 김양의 묘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원형봉토분이지만 신라의 많은 고분 중 무덤의 주인공 이름을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고분 중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김양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9세손일 뿐 아니라 그 가문 또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장수와 재상을 지낸 명문가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영특하고 걸출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 가는 곳마다 정무(政務)를 잘 다스려 명성이 있었다.


    흥덕왕(興德王: 826~836)이 돌아가자 적자(嫡子)가 없어 왕의 4촌 동생 균정(均貞)과 또 다른 4촌 동생의 아들 제륭(悌隆)이 왕위를 다투었는데 김양은 균정의 아들인 우징과 매제인 예징과 함께 균정을 왕으로 삼고, 궁궐에 들어가 사병들과 궁궐을 방어하였다. 그러나 제륭의 무리 김명(민애왕)과 이홍 등이 와서 포위하자 김양이 군사를 궁문에 배치하여 막으면서 새 임금이 여기에 있는데 너희들이 어찌 감히 흉악한 반역을 할 수 있느냐.’ 하고 드디어 활을 당겨 10여 사람을 쏘아 죽였다.


    상대방 제륭의 부하 배훤백이 활을 쏘아 김양의 다리를 맞혔다. 이에 균정이 말하기를 저 편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형세를 막아 낼 수가 없다. 공은 짐짓 패한 척 물러가 뒷일을 계획하라.’ 이에 김양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 한지의 시장에 이르렀을 때 균정은 반란군들에게 죽었다. 김양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밝은 해를 가리켜 맹세하며, 아무도 모르게 산야에 숨어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균정의 아들 우징(신무왕)이 남은 군사를 거두어 청해진으로 들어가 장보고와 결탁하여 거사를 모의 한다는 것을 듣고 합류하여 4년 만에 민애왕(김명)을 죽이고 거사를 성공하였다. 이에 김양은 좌우 장군들에게 명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돌면서 말하기를 본래 원수를 갚으려한 것이므로 지금 그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귀족 남녀와 백성들은 마땅히 각각 편안히 거쳐하여 망동하지 말라.’ 하고 왕성을 수복하니 백성들이 안심하였다.


    다시 김양은 예전에 활을 쏘아 자신을 맞혔던 장군 배훤백을 불러 말하기를 개는 제각기 주인 아닌 사람에게 짖는다. 네가 그 주인을 위하여 나를 쏘았으니 너는 의로운 군인이다. 내가 따지지 않겠으니, 너는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하며 더 이상 문책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배훤백을 저렇게 처리하니, 다른 사람들이야 무엇을 근심하리요라고 말하며 감동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김양이 배훤백을 문책하지 않는 모습,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에 대해 적이라 할지라도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들은 고대인들이 얼마나 신의(信義)를 귀중하게 생각하였으며 적에게 너그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너무도 쉽게 신의를 버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지 100일 가까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지난정부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거나 사퇴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기도 하고 변절도 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자존감과 책임감, 사명감은 사전에조차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또 지난 10여 년간 권력에서 비켜나 있던 사람들이 새정부에 임명되어 여론을 통과하지 못하고 하차하는 사퇴문에서 조차 그들의 반성이나 사과가 가슴에 와 닫지 않고 있다. 하물며 자리를 되찾은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나 자신을 비롯해 우리들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라는 말로 한국사회가 진정한 통합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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