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보호활동 글읽기
월정교 복원 및 모니터링
작성자
김호상
작성일
2012-08-09 16:51
조회수
6594


월정교와 관련해서는 『삼국사기』에 "경덕왕 19년(760) 궁궐 남쪽의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의 두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고적조에서는 "월정교(月淨橋)는 府의 서남쪽 문천 위에 있는데 유지가 남아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위의 책에 인용된 고려 명종 때의 사람 김극기(金克己)의 詩에 “반월성 남쪽 토끼고개 주변에 무지개다리가 엎어져 문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하였으니 다리의 모습이 아치(arch) 모양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충열왕 6년(1280) 부유수(副留守) 노경륜(盧景倫)이 월정교를 중수한 사실 등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원래 월정교(月淨橋)의 표기가 월정교(月精橋)로 이때 이미 바뀌었음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520년 이상 다리의 기능을 온전히 지켜온 신라 최대의 석교임도 알 수 있다.

월정교에 대한 복원계획은 경주시가 1982년 7월 월성을 중심으로 계림, 첨성대, 나물왕릉 등을 포함한 [경주월성대공원 조성기본계획]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83년 1월에 추가로 신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월정교 복원계획을 포함시키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으로 경주시에서는 월정교지의 북측 교대지 위에 세워져 있던 조선시대 건물인 사마소(司馬所)를 1984년 10월부터 12월에 걸쳐 하류인 서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인근의 경주시 교동 89-1번지로 옮겼으며, 복원설계를 위한 1차 자료조사(1984.11.26~1985.4.24)와 2차 자료조사(1985.11.13~1986.9.8)를 실시하였다.

2차 자료조사는 석교 교각지 하류 19m지점에서 목교 교각지의 기초까지를 포함한 수습 발굴조사였다. 1·2차 조사를 통해 석재조사 및 부분적 수습발굴조사만으로는 월정교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얻었으며, 따라서 1986년 11월 20일부터 1987년 6월 30일까지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한 정식발굴조사가 실시되었습니다.

1990년에 양측 교대지를 복원정비한 후 지속적으로 월정교 복원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여타 제반여건상 시행되지 못하다가, 2005년 월성과 신라왕경의 연결통로인 월정교를 복원하고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계획의 일환인 5개 선도사업이 채택되면서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월정교 복원 공사는 경주시와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청과 관련기관의 전문가 및 문화재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는 복원작업 중에 있다. 다만 복원 중 원래의 교각보다 높게 설계하여 복원함으로 주변 유적환경과 잘 어울리지 않는 문제 점 등이 노출되고 있어 향후 지속적인 연구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월정교의 복원관 관련된 여러 의견이 계신 분들은 하단에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첨부파일
452Q4179.JPG
작성자
  오인희   :
댓글내용
바쁘신중에도 문화유산에관한자세한해설감사합니다.앞으로도잘부탁드립니다.
작성일
201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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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호상   :
댓글내용
오인희님 안녕하세요. 한 해를 돌아서 이제야 답글을 올림니다. 누가보면 주인장이 홈페이지 주인이 맞느냐고 비웃을 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확인을 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림니다.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작성일
201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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