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죽어 핀 꽃이라지만...
사진) 며느리밥풀꽃(신라문화진흥원 홈페이지)출처) 김종태, 풀꽃시집, 1992, 도서출판 새벽. p.92[며느리밥풀]시어머니 타박에 밥알을 입에 문 채며느리 죽어 핀 꽃이라지만그건 시어머니 젊어 서슬 푸르던호랑이 담배 피던 19세기 전설이다.알토란 내새끼 너 하나 믿고청춘을 우리고 우려 뒷바라지에있는 재산 다 날리고 주고 뺏기고오그라진 허리모지라진 손발쪼그라진 얼굴...
금자라의 머리는 높은 산을 이고 있다.
사진) 경주남산의 또 다른 이름인 ‘금오산’의 자라목에 해당되는 부분이 도로에 의해 단절되었던 부분을 터널로 복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복원 중이라 거칠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숲이 울창해지면 경주남산은 더욱 영산으로 복원될 것입니다.(2016.5.19.)마을이나 도시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도 남쪽에 위치한 산을 통칭 대명사적인 성격으로 부르는 이름이 ‘남산...
냇가로 나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날
사진) 강릉 단오제의 단오장에서의 소지올리는 모습(문화재청 자료)설명) 단오장(端午粧)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했던 풍습가운데 하나로 나뿐 귀신을 없앤다는 뜻에서 행하여지던 여인들이 예쁘게 꾸미는 모습[治粧]. 의례 후 기원문을 불태움.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대사회에서나 현대사회에서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동일할 것이다. 화장품이 빈...
사화시대의 퇴계와 당쟁시대의 율곡
사진) 김희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2012.6.16)설명) 동국대학교 총장재임시절 필자와 함께 경주남산 용장사지 3층 석탑에서 기념사진. 총장님께서 한국의 정치가 디오니소스형 정치를 하시던지 아폴로형 정치를 하시던지 역사의 진전이 있는 정치에 기여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며 정치가였지만 그들이 처...
천년신라, 멸망의 짊을 진 경애왕
사진) 신라 일성왕릉(사적 제173호, 경주시 탑동 산23. 추정 경애왕릉)설명) 현재 경주남산에 위치한 일성왕릉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경애왕릉(景哀王陵)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 [삼국사기]에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견훤에게 핍박당하여 자살하자, 경순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한 후, 경애왕의 시신을 들어 서당(西堂)에 모셔두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통곡하였다. 시호...
부처님 오신날, 혜숙과 혜공스님 생각
사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좌협시보살설명)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리에 소재한 국보 제84호 마애삼존불 중 좌협시 보살로 반가사유상이다. 예배대상의 경건함과 엄숙함이 보이지 않는 백제불상 특유의 자유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국보 제84호. 이 사진으로 나마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온 누리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
김시습의 사청사우처럼 세상을 미움없이 살자!
사진) 기림사 매월당 영당(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설명)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은 원래 은거하였던 경주남산의 용장사에 사당을 지어 모셨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경주유림들이 경주부윤 윤창식에게 청원하여 기림사 경내에 다시 지었으나 퇴락되어 1998년 경주시에서 현 위치에 다시 재건하였다. 현재의 영정은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
임은 한 송이 붉게 핀 복숭아꽃이었다.
사진) 홍도 최계옥 추모비(경주 석장동 금장대)설명) 조금 전 제막식에 앞서 추모비를 현장에 설치한 사진입니다. 이 추모비가 임의 묘비처럼 도시개발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오래토록 세운 이들의 뜻과 함께 오래토록 전해기기를 기원해 봅니다. 홍도 최계옥 추모비 제막식에 [문화유산둘러보기] 가족분들을 초대합니다. 제막식) 일시: 2016. 4. 16(토) 오후 3시 장소: ...
폐족 된 선비라도 사람 구실은 해야된다.
사진) 하피첩(보물제 1683-2호, 국립민속박물관소장)설명) 하피첩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오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 다산은 보내온 아내의 치맛감을 보고 아내의 사랑과 아내의 고단함을 함께 느꼈을 것이지만, 홍씨부인은 귀향가 있는 남편에게 어떠한 마음으로 치...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어서...
사진) 홍도 최계옥 추모비 제작모습(경주 외동석재 한동식 기증) 설명) 홍도 최계옥(1778~1822년, 향년 45세)은 조선 정조 임금으로부터 홍도(紅桃)라는 별호를 받은 기생으로 ‘황진이’, ‘매창’이와 더불어 그 이름을 크게 떨친 천재예술인이며 특히 후학양성에 전념한 인물임. 홍도가 죽음을 맞이한 30년 후 경주의 풍류객 및 교방의 악공과 기생들이 묘비를 건립하여 묘지...
왕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사진) 경덕왕릉(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산8번지)설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왕릉의 위치가 이곳인지 확실치 않고, 둘레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12지신상의 조각수법이 신라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 이 무덤이 경덕왕의 무덤인지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은 효성왕(孝成王)의 동생으로, 효성왕에게 아들이 없어 뒤를 이어 왕위에 올...
15세 바둑신동 스승 조훈현을 꺾었다.
사진) 경주 분황사지 출토 통일신라시대 바둑판설명) 2006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경주 분황사 발굴]에서 출토된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 바둑판이다. 바둑판은 흙 벽돌(전·塼)에 만든 것으로, 벽돌을 굽기 전 한쪽 면에 가로 세로 각 15줄씩 규칙적으로 그은 뒤 구워 제작했다. 가로, 세로 15줄의 바둑판은 각각 19줄의 현대식 바둑판이나 중국 하북성에서 출토...
효자비와 가난한 여인의 통곡
사진) 남득온 효자비(경주고등학교 정문 분황사 도로길) 설명) 조선시대 경주지역에서 부모나 시부모를 잘 섬긴 사람 가운데 나라에 알려져 표창을 받은 정려비는 40여 곳에 이른다. 이들 중 조선 태종 때 세워진 남득온의 효자비는 경주에 세워진 효자비로는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도로변 어지러운 건축벽면에 안내문 하나 없이 세워져 있다. 오늘은 청소도구 건...
금관총의 금관과 오늘날의 모자
사진)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발견된 신라의 금관(국보 제 87호)설명) 신라의 금관을 ‘왕관’ 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왕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비나 왕자 등 최고의 계층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재료에 따라 ‘금관’ 이라고 부른다. 신라의 금관들은 연약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실제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하여 넣는 부...
내가 장애가 많아 좋은 기회를 놓쳤다.
사진) 신라문화진흥원 백태순 촬영 해설) 은사 스님께서 소식이 없다. / 손전등도 없는데 / 눈 덮인 어두운 산길 / 어떻게 오르시려구. / 털신도 안 신고 / 고무신만 신고 나가셨는데 / 목도리랑 모자하고 털실 장갑은 챙겨 가셨는지. / 해는 서산 너머 이미 져 버렸는데 / 눈 속에 잠긴 발은 그나마 나아 / 귓불은 얼어 떨어질 라고 한다. / 바람 소리 계곡 물 소리 / 이따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