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이유를 잊어버린 정부...
사진) 군 복무 기간, 일상의 모습(1988. 9)
설명) 상등병시절 일등병이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다 큰 청년이 애교부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군 생활이 거꾸로 메달아 두어도 시간이 쉽게만 흘러가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군 복무가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가 아니라 의무적 복무였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렇지만 그 ...
고대사회에서는 문신을 왜 새겼을까?

사진) 중국 집안의 고구려 고분벽화 5회분 중 4호 묘의 용
설명) 분지의 중앙에 무덤들이 투구나 밥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처럼 5개가 있어 오회분(五盔墳) 또는 흙덩이가 5개 모여 있다고 하여 오괴분(五塊墳)이라고도 불린다. 오회분 4호묘는 1962년에 발굴되었으며 7세기의 전형적인 고구려벽화의 양식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四神)을 네 벽에 직접 ...
경흥, 죽을 때 까지 말을 타지 않았다.

사진) 삼랑사지 당간지주(경주시 성건동 129-1, 보물 제 127호)
설명) 삼랑사는 신라 진평왕 19년(597)에 창건하였으며, 대대로 왕들의 행차가 잦았던 이름 높은 절이었지만 지금은 당간지주(幢竿支柱)만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불교 의식을 할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하며, 이 장대를 양쪽...
경덕왕, 땅 속의 염불소리를 듣다.

사진) 굴불사 사면석불 남쪽면(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보물 제121호)
설명) 사방불(四方佛)은 동서남북의 사방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를 정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부터 만들어 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유행을 하였다. 각 방위마다 어떤 부처를 모시는가는 불교경전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동쪽에 약사불, 남쪽에 석가불, 서쪽에 아미타불, 북쪽...
불우한 나와 어리석은 백성을 구하리라!
사진) 수운 최제우 선생 복원생가 안내도(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설명) 수운의 생가는 몇 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아버지 때에 보수와 개수를 하였지만, 그 마저도 수운이 20세가 되던 1843년의 화재로 인하여 생가는 완전하게 소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일을 계기로 처가인 울산으로 이사하였지만, 선생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용담의 집을 수리하여 살았던 것을 보면 복원된 이...
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분가루가 부끄럽다.
사진) 유몽인 위성공신교서(보물 제1304호, 전남 고흥군 유효주 소장)
설명)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외교관으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에게는 [어우야담]이라는 최초의 야담집을 지은 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왕의 최측근인 도승지로 있을 때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영의정 유영경(柳...
자치단체장, 포상은 문무왕처럼 하시라!
사진) 문무왕릉비의 귀부(경주시 배반동 935-2, 사천왕사 터)
설명) 사천왕사 터 남쪽 구릉아래에 동서로 마주하고 목이 잘려나간 2기의 귀부 중 서편의 귀부는 문무왕릉의 비가 세워졌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귀부에 대해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17년 또는 1824년에 문무왕릉 비편 두 개를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재발견하여 비편을 비좌에 꽂아보니 크기가 일치하였다...
영의정을 통해 본 대통령과 국무총리

사진) 황희선생 묘(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1번지)
설명) 조선왕조를 통하여 가장 명망 있는 재상 중 한분으로 칭송되었던 황희(1363~1452)의 묘소이다. 황희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강직한 선비였으며, 영의정을 지낸 18년 동안 조선의 기틀을 튼튼히 다진 참된 재상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그런 그에게도 가족문제를 비롯해 너무나도 많은 약점들을 가...
스님, 명성을 찾아 어디로 가십니까?
사진) 라코프스키 교수와 함께 경주 서악동 고분군에서(2006. 9. 29)
설명) 라코프스키(Eric P. Rakowski) 교수는 버클리대학 로스쿨교수로 세계적인 조세전문 변호사이다. 그가 버클리클럽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경주의 유적지를 안내한 적이 있다. 문득 이 글을 쓰면서 그를 떠올린 것은 그는 법조인이지만 그의 주요 관심분야 중의 하나는 도덕철학이었다. 그는 ...
신라인들의 국제결혼과 다문화가정
사진) 치술령 망부석(경주 외동읍)
설명)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왜국에 볼모로 잡혀 있는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여 신라로 보내지만 자신을 탈출하지 못하고 왜국의 섬, 목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그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이 곳에 올라 왜국 쪽을 바라보며 슬피 울다가 죽어서 마침내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었다한다. 치술령은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구역에...
매화를 사랑했던 남자, 세상인심을 읊다.
사진) 기림사 매월당 영당(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설명)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은 원래 은거하였던 경주남산의 용장사에 사당을 지어 모셨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경주유림들이 경주부윤 윤창식에게 청원하여 기림사 경내에 다시 지었으나 퇴락되어 1998년 경주시에서 현 위치에 다시 재건하였다. 현재의 영정은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효자 손시양의 정려비와 부모님의 은혜

사진) 경주 황남동 손시양 정려비 전경(보물 제68호)
설명) 이 석비는 노천에 있던 것을 1977년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필자가 어제 손시양 정려비를 촬영하던 중 5월은 어린이의 달이기도 하여 황남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놀기에 기념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가정의 달, 가족간에 또 이웃간에 더욱더 깊은 가족애와 이웃애가 넘치기를 기대합니다.경주 황남동 주택 길 한 쪽...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신라의 안전한 선박
사진) 금령총출토 배 모양 토기(경주시 노서동고분군 내)설명) 1924년 금령총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배 모양의 토기 2점 가운데 하나이다. 대체로 고분에서 출토된 배는 죽은 사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토우가 부착된 이 배 모양의 토기는 고기잡이하던 신라인들 생활상의 장면을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 신라인...
솔거의 신화를 재현한 복제 배아줄기세포
[문화유산둘러보기] 가족들은 제54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혁명의 희생자들과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삼가 고인이 되신 분들에게는 명복을 빌며, 아직 여객선내에 있는 유가족들에게는 깊은 마음으로 위로와 용기를 전합니다.
사진) 불국사 목어(경주시 불국로 385)
설명) 목어는 통나무의 외형을 물고기모양으로 조각하고 아래의 복부를 파서 공간을 내고 그곳...
월지, 한국조경의 자존심을 되찾자!

사진) 월지(안압지)전경 (경주시 원화로 102)
설명) 사적 18호인 월지(月池)는 신라의 궁궐이자 왕과 귀족들의 연회을 벌였던 곳이다. 월지는 2011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안압지’라고 불리워졌다. 안압지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갈대와 부평초가 무성하여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다니는 한가로운 못’ 이라는 뜻으로 시인묵객들에 의...